이번 시간엔 '500일의 썸머 (500 days of summer)'를 연출한 것으로 더 유명한 마크 웹 (Marc Webb) 감독의 또 다른 장편, '리빙 보이 인 뉴욕 (The only living boy in New York)'에 대해 분석해보자. 이번 작품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바로 감독의 공간 활용법이다. 세트가 아닌 실제 뉴욕 도심 곳곳을 누비며 촬영했기에, 촬영공간에 제약이 클 수밖에 없고, 이는 자칫 단조롭고 지루한 화면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마크 웹 감독은 본인의 연출력을 바탕으로 이런 제약을 오히려 영화의 장점으로 변화시킨다. 등장인물들의 배치와 동선을 다변화하고, 화면 전면과 후면에 보조출연자, 조명, 소품 등을 채워 넣어 화면의 깊이감을 최대한 살린 것이 핵심이다. 이런 점을 예의 주시하며 주의 깊게 살펴보자.
(※ 본문 내용에 영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은 참고하자.)
'리빙 보이 인 뉴욕' - 영화 연출 분석
1. 오프닝 씬
오프닝 씬에서는 보통 관객들에게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전달하고, 주요 등장인물과 그들의 관계를 소개한다. 특히 '첫 장면'은 영화와 관객이 서로 처음 만나게 되는 순간인 만큼, 연출가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 중 하난데, 최대한 영화의 주제와 분위기를 압축해서 보여줄 수 있도록 설계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른 영화, 다른 포스팅에서 보다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다.
리빙 보이 인 뉴욕의 오프닝 씬에서는, 주인공인 '토마스 웹(칼럼 터너)'과 그의 여자 사람 친구인 '미미(키어시 클레몬스)'를 소개하고, 그들의 관계를 보여준다. 과거 술에 취해 원 나잇 스탠드를 한 경험이 있는 두 사람. 하지만 서로를 향한 두 사람의 온도 차이는 극명하다. 토마스가 이를 문제 삼으며 심술을 부리자, 훽 돌아서 떠나버리는 미미. *이때, 떠나는 미미를 성급히 뒤따라가는 토마스를 통해 애정의 방향이 일방적인 관계임을 관객들에게 확인시켜 준다.
2. 인물 설명
인물을 설명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말과 행동이 가장 직접적으로 인물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고, 내레이션 혹은 제 3자들의 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인물을 묘사하는 방법도 있다. 여기서는 인물의 의상과 소품, 행동을 통해 주인공 토마스를 표현한다. 어두운 색상의 양복들 틈에서, 홀로 밝은 재킷을 입어 도드라지는 주인공. 거기에 헤드셋까지 착용해 세상과 단절된 인상을 추가한다. 하지만 만원 지하철 안에서는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할 줄도 아는, 마음씨 따뜻한 청년임을 놓치지 않는다.
3. 첫 만남 - 새로운 인물의 등장
새로운 인물을 이야기에 처음 등장시키는 일은 작가나 감독에겐 설레는 작업임과 동시에 스트레스받는 일이다. 특히 그 인물이 중요한 인물일수록 부담감과 스트레스는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리빙 보이 인 뉴욕'에서도 어김없이 고뇌의 흔적이 느껴진다. (단, 여기부턴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자.)
이 장면은 생부인 제랄드(제프 브리지스)가 생애 최초로 아들 토마스와 마주하는 장면이다. 그만큼 극 중에서도 극적이고 중요한 순간이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한 감독의 선택이 엿보인다. 이 씬의 시작은,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토마스의 모습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샷으로 시작한다. 잠깐이지만, 미처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토마스의 모습을 보고 있는 관객들은 서스펜스의 감정을 느낀다. 등장인물보다 관객들이 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을 경우, 서스펜스의 감정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곧바로 의문의 인물이 대화를 시도하고, 주인공 토마스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하며 시선을 거둔다. 바로 여기서 감독은 또 한 번의 재미를 더한다. 토마스는 계단에 앉아있는 의문의 인물이 누군지 확인했지만, 정작 관객들에겐 보여주지 않은 것이다. 이때는, 반대로 관객보다 등장인물이 아는 정보가 더 많아진다. 그리고 미스터리의 감정이 일면서 궁금증이 쌓이게 된다. 관객 못지않게 토마스마저 미스터리한 인물에게 진심으로 관심이 갈 때까지 얼굴 밝히기를 지연시켜서 궁금증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토마스의 관심을 끄는 대사가 나오자, 그제야 다시 고개를 들어 계단의 인물을 올려다보는 토마스. 이때 비로소 관객들도 처음으로 계단에 앉은 미스터리한 인물의 정체를 확인하게 되면서 궁금증이 해소된다.
이 씬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바로 인물들의 자리 배치이다. 만약, 독자 본인이 감독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한 번 상상해보자.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두 사람이 우편함 앞에 나란히 서서 대화하는 모습은 어떤가. 제랄드가 로비에서 토마스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아니면 자기 집 현관문을 열어놓은 채 토마스가 건물 복도를 가로질러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제랄드의 모습은 어떤가. 모두 그럴듯하지 않은가. 사실 어떠한 선택도 가능하다. 하지만 감독은 제랄드의 위치로 계단 위를 선택한다. 계단으로 인해 두 인물의 높낮이가 달라져 대화할 때 시선을 위아래로 주고받게 된다. 이는 같은 높이에서 대화를 주고받을 때보다, 장면에 역동성을 부여하고 흥미를 유발하는 효과를 낳는다. 본인이 연출할 때, 특별히 지루하고 평범하게 장면을 구현할 의도가 있지 않다면, 인물 배치의 높낮이만 다변화해도 훨씬 장면 자체에 생명력이 생길 것이다. 실용적 연출 팁으로 꼭 챙겨가자.
4. 단계적 관계 형성 - 유대감
마크 웹 감독은 촬영지에 있는 좁고 긴 복도를 최대한 활용해 두 인물의 유대감을 쌓는 과정을 구현한다. 긴 복도를 천천히 트렉 인/달리 인 하여 관객들이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때도 두 사람의 높낮이가 다르다는 점을 눈여겨보자. 점점 더 사적인 내용 대화가 깊어지고, 아버지 제랄드의 조언이 시작되면서 측면 단독샷이 오버 더 숄더 샷(Over the shoulder shot, 흔히 줄여서 OS샷이라고 함)으로 변한다. 오버 더 숄더 샷은 단독 샷에 비해 정서적으로 상대방의 영향을 받는다는 인상을 준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경우엔 오버 더 숄더 샷으로 두 사람의 유대감이 쌓여가는 과정을 은연중에 전달하는 효과를 얻는다.
5. 경제적 공간 활용 - 인물 설명
다음은 토마스가 용돈벌이로 학생들 과외를 하고 있다는 이전의 대화 내용을 시각화한 부분이다. 주인공의 일상을 보여주는 짧은 몽타주의 일부분이라 중요도는 낮지만, 짧은 샷임에도 불구하고 화면의 앞뒤 양옆으로 꽉 차 있는 화면 구도로 인해 전혀 심심할 겨를이 없다. 철창살 뒤에서 농구하고 있는 남학생들, 철창살에 붙어 대화 중인 여학생들, 그리고 테이블에 앉아서 공부 중인 학생들, 심지어 테이블 앞으로 선생님으로 보이는 여성 보조출연자까지 지나가면서 화면의 깊이감을 최대한으로 살린다. 게다가 서 있던 토마스가 앉는 움직임까지 가져가면서 화면에 역동성과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이 샷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사실 제한적인 촬영 공간을 최대한 활용했다는 점은 분명 칭찬할만하지만, 정작 이게 학교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학생이라는 정보가 부족한 것 또한 사실이다. 만약 토마스가 과외를 한다는 기존 대화가 없었더라면, 그 누구도 이 샷을 보고 단번에 그가 과외 중이라는 사실을 맞출 순 없을 것이다. 추측건대, 감독은 직접적으로 학교를 나타내는 로케이션 소품이 화면에 잡히는 게 유치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어쩌면 이 샷이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메인 플롯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판단해 크게 힘들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 누구도 제한된 예산과 촬영 스케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감독은 선택과 집중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6. 공간 설명 - 설정샷 (Establishing Shot)
감독은 영화의 장면(씬)이 바뀔 때마다 관객들에게 새로운 공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다음 장면을 보자. 감독은 토마스와 미미가 위치한 공간을 설명하기 위해 180도 법칙이라고 불리는 가상선을 넘어가는 선택을 한다. 첫 번째 설정샷과 이어지는 두 개의 투샷을 비교해보면, 화면상 각 인물의 위치가 좌우로 뒤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두 사람 사이의 오묘한 감정 즉, 정서적 끈을 이어가기 위해 오버 더 숄더 샷을 사용한다. 마치 서로가 서로의 삶의 일부가 된 듯, 각별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
7. 관계 설명
아버지의 내연녀-조한나(케이트 베킨세일)의 존재를 알게 된 토마스가 아버지 에단 웹(피어스 브로스넌)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추궁하기 위해 합석한 장면이다. 이 짧은 장면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와 힘의 균형을 짐작할 수 있다. 돈 많고 능력 있고 잘생기기까지 한 에단에겐 여유가 느껴지는 반면, 변변한 직업도 없고, 돈도 없는 토마스는 위축돼 보인다. 양복쟁이들로 가득한 고급 레스토랑에, 홀로 후드티를 입고 있는 토마스의 모습이 어딘지 부자연스럽다. 게다가 토마스가 이야기를 꺼내려고 할 때, 지인과 인사를 나누는 에단의 행동으로 토마스의 말이 완전히 무시되기까지 한다.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둘 간의 힘의 기울기는 명확하다. 이때, 눈여겨볼 게 있다. 지인과의 인사를 위해 몸을 일으킨 에단을 따라 카메라를 틸트 업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지어 일부러 얼굴이 잘리도록 내버려 둔다. 이는 이 장면, 이 샷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토마스라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재확인시켜주는 기능을 한다. 오히려 토마스의 반응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곧이어 사적인 대화가 이어지자마자 둘의 대화 씬은 오버 더 숄더 샷으로 전환된다. 필자가 자꾸 오버 더 숄더 샷을 언급하는 이유는, 많은 영화감독 지망생들, 심지어 현업에서 일하고 있는 수많은 감독들이 대화 신을 연출할 때 아무런 의도 없이 습관처럼 오버 더 숄더 샷을 사용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고, 그것에 대해 지극히 회의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번엔 이 씬의 설정샷을 조금 더 디테일하게 확인해보자. 이 씬의 중심인물인 토마스와 에단을 좌우 대칭이 되도록 정 중앙에 위치시켜 안정감을 확보한 상태에서, 앞뒤로는 보조출연자와 레스토랑 소품 및 조명으로 화면을 가득 채워 그 깊이감을 최대한 구현한다. 전체 이야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뉴욕 상류사회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끔 한다.
8. 앙각의 활용
웬만큼 큰 규모의 영화가 아닌 이상, 대낮에 도심을 통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더욱이 그게 뉴욕 맨해튼의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앞이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때, 감독은 앵글 트릭을 사용해 장소에 대한 정보제공과 통제 문제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다. 추가적인 뒷배경의 등장을 막기 위해 카메라를 고정시켜 원씬 원샷으로 촬영하고, 앙각 앵글을 선택해 뉴욕을 상징하는 시그니처 건물을 화면에 담는 동시에, 길 건너에서 촬영 장면을 구경하고 있을 시민들을 화면에서 제거하는 효과까지 얻은 것이다.
9. 공간을 통한 인물 설명
인물(캐릭터)을 설명하는 또 다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그/그녀의 사적인 공간을 활용하는 것이다. 다음은 출판업자로 성공한 에단 웹의 개인 사무실이다. 묵직한 원목과 세련된 가구들로 미뤄 그의 성공 정도를 가늠해볼 수 있으며, 사무실 한편에 수북이 쌓여있는 원고들과 곳곳에 배치된 가족사진들, 특히 화면 우측에 보이는 토마스의 사진을 통해 그가 일 중독자임과 동시에 가족에 대한 애정이 각별함을 엿볼 수 있다. 명심하자, 인물의 '행동' 다음으로 그/그녀의 성격을 가장 확실하면서도 명확히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인물의 '환경(작게는 의상, 소품부터 크게는 공간 등 시각적 요인들을 모두 포함한 포괄적 개념)'이라는 사실을. '대사'는 그다음이다.
10. 미행 시퀀스
▶ 의상 및 소품 활용
추적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관객들에게 명확히 하기 위해 의상과 소품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어두컴컴한 주변 인물들의 의상과 대조적으로 미행 대상의 의상과 핸드백만 눈에 띄는 색상을 선택하면, 관객들의 시선을 반강제적으로 대상에게 집중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 포커스 이동의 효과
카메라 포커스의 이동만으로도 토마스가 조한나를 몰래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심지어 조한나에게로 재차 초점이 옮겨갈 땐, 토마스가 조한나의 시선을 피해 숨었다는 느낌까지 전해준다.
▶ 포커스 이동
토마스의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 사용된다. 이때, 토마스와 조한나 사이에 존재하는 보조 출연자들과 사물 등은 둘 사이의 거리감을 더욱 부각해준다.
▶ 트랙 인 샷
아래 트랙 인/달리 인 샷의 경우, 미소 짓는 조한나(액션)에 대한 토마스의 반응(리액션)을 담아내기 위해 사용된 카메라 무브먼트로써, 그가 서서히 그녀에게 매료되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 주변 환경을 이용한 인물의 감정표현
힘차게 솟구치는 분수의 물줄기가 조한나를 향한 토마스의 잠재된 욕망을 시각화한다.
▶ 액자 구도
막상 조한나의 집 앞까지 쫓아왔으나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토마스의 우유부단함과 나약함을 창문틀에 갇힌 토마스의 모습으로 시각화한다.
11. 대화 씬
TV 드라마 때문에 마주 보며 대화하는 모습이 익숙하다. 하지만 실제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해보면, 서로 똑바로 마주한 채 대화를 나누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이야기를 들으면서 딴짓을 하거나, 심지어 자주 듣는 이야기일 경우, 고개를 돌려 넌지시 다른 곳을 응시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극 중에서도 배우들이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일 때,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게 처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강한 뉘앙스까지 안겨주게 된다. 몸은 엄마 주디스(신시아 닉슨) 쪽으로 열어둔 채, 정작 고개는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는 토마스.
혹시 독자 본인이 영화 혹은 영상을 연출할 기회가 있다면, 의도적으로라도 이와 같은 대화 씬을 넣어보자. 앉아있는 사람과 서 있는 사람의 대화 말이다. 게다가 90도 각도로 몸을 틀고 있어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두 사람의 대화라면 더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분명, 서로 마주 본 채 오버 더 숄더 샷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보다 훨씬 더 사실적으로 느껴질 것이고, 더 나아가 캐릭터(인물)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12. 인물 배치 및 동선
참고로, 전방의 댄스 스튜디오와 더불어 조한나의 옷차림 및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그녀의 행동을 통해 그녀가 방금 막 댄스 수업을 마치고 나온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조한나에 대한 인물 정보를 제공해준다.
이 장면을 보면 감독이 얼마나 화면을 알차게 채우기 위해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카메라 바로 앞의 양옆 사이드는 댄서 보조 출연자들로 메우고, 혹시나 관객들이 공간에 대한 정보를 놓칠까 염려돼 '댄스 센터'라는 글자까지 친절하게 잡아준다. 화면 뒤편은 또 어떤가. 쉼 없이 지나다니는 자동차와 행인들까지, 무릎 샷(knee shot) 정도의 사이즈임에도 불구하고 화면 어느 곳 하나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꽉 차 있다.
카메라 전면에 배치된 커플 댄서들의 움직임은, 조한나의 유혹과 도발에 흔들리는 토마스 내면의 성적 끌림과 욕망을 대변해주는 듯한 인상을 준다. 여기에 트랙 인/달리 인까지 더해지면서 두 인물의 감정에 서서히 몰입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조한나의 퇴장 동선도 흥미롭다. 조한나는 본인과 가까운 화면 우측이 아닌, 토마스가 등장한 화면 좌측으로 빠져나간다. 이때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동선이 교차하게 되는데, 이는 조한나의 유혹에 넘어가 꼬여버린 토마스의 감정을 시각화한다. 만약 조한나가 화면 우측으로 퇴장한다고 상상해보자. 그녀가 떠나기 직전까지 두 사람이 주고받는 눈빛에서 발생하는 묘한 케미스트리는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이처럼 인물의 동선 하나만으로도 씬 전체에 역동성을 부여할 수 있고, 의미까지 더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비슷한 상황을 연출하고자 한다면, 주의 사항이 한 가지 있다. 다음과 같은 설정은 자칫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이 너무 많아서 시선이 분산될 수 있다. 따라서 보조 출연자들의 의상은 최대한 튀지 않는 검은색 계열로 통일하고, 반면 주인공들은 한눈에 도드라져 보일 수 있도록 밝은 색 계열의 의상을 선택하도록 하자.
13. 원씬 원샷 (Oner)
국내에선 원씬 원테이크, 원씬 원컷 등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원씬 원샷, 워너(Oner)에 대해 알아보자.
원씬 원샷은 여러 개의 샷을 한 번에 촬영하는 것인 만큼 사전에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무엇보다 가장 놓치기 쉬운 부분이 바로 듀레이션이다. 샷의 듀레이션이 예상보다 짧은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예상보다 듀레이션이 긴 경우라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워너는 샷 중간에 임의적으로 편집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해당 씬을 재촬영하거나 씬 전체를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이는 영화 전체를 망가뜨리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배우·카메라의 동선을 체크하는 사전 리허설 단계에서부터 시간을 관리하는 치밀함이 필요하다.
워너 안에서 중요한 대사나 행동을 포인트로 지정해주면, 씬 전체에 리듬이 생기고, 배우들과 카메라도 각자 타이밍을 재정비할 수 있는 심리적 여유가 생겨 작업이 훨씬 수월해진다. 특히 이 방법은 긴 듀레이션의 워너를 촬영해야 할 때 더욱 효과적이다.
하지만 워너에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촬영이 어려운 만큼 보상도 따르기 마련이다. 원씬 원샷은, 따로 샷(컷)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현장의 분위기를 실시간으로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다. 또 배우들이 끊김 없이 한 호흡으로 연기할 수 있기 때문에 배우들에게 보다 높은 자유도와 몰입도를 제공할 수 있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후반 편집 작업에서도 상대적으로 수월한 부분이 있다.
다음은 제랄드를 따라다니면서 자신의 고민을 토로하는 토마스의 모습이다. 이때, 심각한 표정으로 쉼 없이 떠들어대는 토마스와 본인 할 일을 하면서 무심한 듯 대꾸하는 제랄드의 모습을 눈여겨보자. 이는 시종일관 서로 얼굴을 맞댄 채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하는 모습보다 훨씬 더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런 와중에, 제랄드가 토마스에게 음식을 먹여주면서 둘 사이의 유대감도 놓치지 않고 챙겨간다. 사소한 듯 보이지만, 이 행동은 둘 사이의 유대감을 강조하기 위해 사전에 준비된 연출일 가능성이 크다. 이게 바로 위에서 언급한 포인트가 되는 행동이다.
한편 씬이 진행되는 내내 토마스가 제랄드를 몰아붙이는 일방적 흐름이 이어진다. 만약 끝까지 이 같은 흐름이 이어졌다면 흥미가 반감됐을 것이다. 이 흐름은 씬 막판, 토마스의 정곡을 찌르는 제랄드의 반문으로 한 방에 뒤집힌다. 지연의 효과가 더욱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제랄드가 토마스를 정면으로 마주하자 대립·갈등 구도가 형성되면서 순식간에 장면 전체에 무게가 실리고 긴장감이 형성된다. 이렇게 씬의 핵심 내용을 관객들에게 다시 한번 정리해주고, 토마스의 속마음까지 확인시켜 준다.
참고로 이야기를 할 때 상대방을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강조하고 하는 의도가 내포돼 있다. 즉, 시나리오에 있는 수많은 대사들 중, 감독 본인이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배우에게 그 대사를 언급할 때 상대방을 정면으로 바라봐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14. 리액션 샷의 힘과 기능
영화는 액션과 리액션으로 구성된다. 초보자일수록 액션에만 집중하느라 리액션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리액션이 액션을 더욱 부각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술 취한 삼촌 버스터(빌 캠프)가 마이크를 잡자(액션), 이를 본 사람들의 반응(리액션)이 이어진다. 하나 같이 표정이 일그러지며 불안하고 난처한 표정을 보이는데, 이를 통해 조만간 삼촌 버스터가 사람들에게 독설을 날려 파티 분위기를 망칠 것이란 사실을 암시한다.
15. 삼각관계 시퀀스
극초반 미미를 향하던 토마스의 마음이 조한나에게로 돌아서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장면이다. 인물의 진행방향과 카메라의 무브먼트, 인물의 시선, 교차편집을 통해 서로 엇갈린 세 사람의 관계를 시각화한다.
16. 비교와 대조
유사한 화면 구도의 샷을 연이어 보여주면, 서로 비교·대조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17. 페이드 아웃 효과의 응용
다음은 토마스와 조한나의 첫 성교 장면이다. 페이드 아웃 이팩트를 두 사람의 몸동작에 맞춰 동일한 템포로 연속해서 사용한 게 인상적이다. 특별한 노출이나 과도한 스킨십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용 전달은 물론 관능미까지 구현한다. 이야기의 큰 흐름이 방해되지 않도록 경제적인 시간 활용 또한 눈여겨 볼만하다.
18. 액자 구도
액자 구도는 사용하기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내포할 수 있다. 인물을 세상과 분리시켜 그/그녀의 고립감과 고독함을 부각할 수도 있고, 이야기 속 이야기라는 극의 설정을 시각화할 수도 있다.
마크 웹 감독은 제랄드라는 인물을 설명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액자 구도를 즐겨 사용한다. 마치 영화의 원제 'The only living boy in New York'을 시각화한 것처럼, 도시로부터 분리돼 항상 홀로 술잔을 기울이는 그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그가 외롭고 고뇌에 찬 인물임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극 중 갈등이 해결돼감에 따라, 그런 그의 액자 안으로 아들 토마스가 기웃거리기 시작하고, 급기야 마지막엔 그가 사랑하는 연인 주디스와 그의 팬들까지 모두 그의 액자 안으로 들어오는 변화를 보여준다. 이는 감독이 액자 구도를 단순히 인물을 설명하는 도구에 그친 게 아니라, 이야기의 주제와 연결시켜 확장, 발전시킨 모습이다.
참고로, 이러한 구도의 확장은 비단 액자 구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본인의 스토리에 맞게, 본인의 연출 의도를 관철할 수 있는 하나의 샷이 있다면, 이를 반복적으로 사용해 그 샷의 의미를 확장시키는 연습을 해보자. 영화가 훨씬 풍부하고 세련돼 보일 것이다.
19. 심리적 거리감
공간적 장애물을 활용해 인물 간의 심리적 거리감을 표현할 수 있다.
다음은 미미가 토마스와 조한나의 관계를 의심하는 장면이다. 항상 오버 더 숄더 샷으로 두 사람의 유대감과 친밀감을 강조했던 극 초반과 달리, 감독은 가운데 위치한 쇠창살로 두 인물을 분리시킨다. 이런 물리적 장애물은 멀어진 두 인물의 심리적 거리감을 시각화한다.
20. 제한된 공간의 활용 ①
초보 연출가일수록 화면 안에서 배우들이 움직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혹은 대화 씬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적으로 인물들의 앞뒤로 옮겨 다니며 오버 더 숄더 샷을 촬영하느라 고생하곤 한다. 다음엔 굳이 의미 없는 샷을 나누느라 시간을 보내기보다, 대화 주제에 따라 그때그때 변하는 인물들의 태도와 그에 따른 행동 변화에 중점을 두면서 화면을 구성해보자. 처음엔 어색할 수 있으나, 곧 배우들의 호흡으로 화면이 풍성해지는 마법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다음은 대사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두 배우의 움직임을 이용해 궁금함, 거부감, 미안함, 멋쩍음, 화해와 애정 등 다양한 감정들을 하나의 샷에 온전히 담아낸 장면이다. 고정된 화면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다양한 움직임으로 화면이 채워지는지 볼 수 있다. 게다가 이처럼 샷을 나누지 않고 한 호흡에 촬영할 경우, 두 사람 사이의 공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배우들의 연기력도 돋보이게 된다.
이때 작은 팁을 하나 주자면, 카메라 앵글을 너무 넓게 잡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타이트할수록 몰입감이 높아진다. 단, 너무 많은 행동은 자칫 씬을 산만하게 만들 수 있으니 주의하자.
21. 제한된 공간의 활용 ②
유동인구가 많은 도심에서 영화를 촬영해본 경험이 있는가. 만약 있다면, 다음 내용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빠를 것이다. 제작비가 많아서 모든 경우의 수를 통제할 수 있는 블록버스터급 할리우드 영화를 제외하면, 웬만한 국내 상업영화부터 독립영화에 이르기까지 실제 장소를 섭외해 촬영하는 경우, 촬영지 주변의 시민들을 통제하는 일이 여간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촬영할 화면의 앵글이 넓기까지 하다면 이러한 고충은 배가 된다. 다시 말해, 유동인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앵글 사이즈가 넓으면 넓을수록 제작비가 늘어난다는 소리다. 이때 한 가지 팁을 주자면,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할 바엔 차라리 촬영팀의 몸집을 줄이거나, 카메라를 숨겨서 주변 사람들의 이목 자체를 끌지 않는 게 도움이 된다.
영화 리빙 보이 인 뉴욕의 감독은, 실제 촬영지인 뉴욕을 통제하기보다는, 있는 모습 그대로를 화면에 녹여내기 위해 다음과 같은 앵글을 고안해낸다. 카메라를 노점 건물 안에 숨긴 채, 미디엄 정도 되는 앵글 사이즈 내에서 모든 대화를 진행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비록 앵글의 상하좌우는 제한했지만 등장인물들 앞뒤로 수많은 레이어를 주었기 때문이다. 노점 직원과 노점 건물벽, 노점 고객, 지나가는 행인, 주인공 무리, 철창살, 신호등, 행인들, 나무 등등 얼핏 보아도 열 겹은 넘어 보인다. 그 결과 한정적인 화면 구도임에도 불구하고, 샷이 꽉 차 보인다. 심지어 길거리를 오가는 분주한 시민들 덕분에 뉴욕 거리의 생동감마저 간접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번엔 토마스와 제랄드의 자리배치를 한 번 보자. 높낮이를 다르게 배치한 것을 눈치챘는가. 서로 다른 높낮이로 인해 대화 내내 상대방의 눈을 쳐다볼 일 없기 때문에 훨씬 자연스럽다. 만약 두 사람이 같은 높이에 나란히 앉아서 대화한다고 상상해보자. 굉장히 뻔하고 지루했을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인물들 등 뒤의 철창살은, 두 사람이 뉴욕과 단절된 느낌을 부여한다. 마치 변해버린 도시와 거리를 둔 채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제랄드의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말이다. 어쩌면 이 장면이 영화 제목 'The only living boy in New York'을 가장 잘 표현한 장면이 아닐까.
22. 행동의 힘
항상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게 있다. 바로 말(대사) 보다 행동의 힘이 훨씬 위력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영화나 영상 언어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사실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다음 장면은 미미가 남자 친구와 헤어진 사실을 토마스에게 알리는 장면이다. 미미는 토마스가 이 사실을 듣고 자신에게 다시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그런 미미의 마음은 시종일관 토마스를 쳐다보는 그녀의 행동에 잘 담겨있다. 반면, 토마스는 미미의 이야기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돌리는데, 이는 그의 마음속에 이미 미미가 없음을 보여준다. 만약 똑같은 씬을 택시 후면이 아닌, 인물의 정면에서 촬영했다면 어땠을까. 분명 지금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을 것이다. 개인적으론 토마스의 디테일한 얼굴 표정보다, 보다 굵직한 그의 몸의 언어를 더 부각해주는 뒷모습만 보여준 감독의 선택이 훨씬 탁월했다고 판단된다. 등을 보인 채 고개를 돌리는 토마스의 반응이 더 차갑고 냉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극 초반에 등장하는 택시 씬과 비교해보면 둘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비치는 택시 안에서 시종일관 미미를 바라보며 미소를 감추지 못하는 토마스의 모습과 어둡고 적막한 택시 안에선 시선마저 외면해버리는 토마스의 모습을 비교해보자. 감독의 의도가 보다 분명 해지는 순간이다.
23. 바(BAR) 대화 씬
국내 영화보다는 해외 영화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인물 배치 방식이다. 바를 기준으로 한 명은 바의 정면을, 다른 한 명은 바를 등진 상태로 대화하는 구조이다. 이는 분명 두 사람을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앉히는 것보단 흥미롭다. 하지만 단순히 흥미만을 위해 이렇게 자리를 배치한다면 분명 그 의미가 퇴색될 것이다. 여기에 그럴만한 이유까지 더해질 때 비로소 완성된 좋은 연출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서로 의견이 대립하는 두 인물이 대화할 때 사용되곤 한다. 이 영화의 경우, 뒤편에 있는 거울을 이용해 사랑하는 여자를 몰래 지켜보려는 제랄드의 의도가 있기에 가능한 인물 배치이다. (참고로 사선으로 길게 늘어선 바와 조명들, 그리고 화면 뒤편에 북적대는 보조출연자들이 화면에 역동성을 부여한다.)
이런 인물 배치는 꼭 바(bar)에서만 가능한 건 아니다. 상대적으로 바가 많이 없는 국내의 경우, 건물 계단이나 옥상 난간, 전동차 출입문, 철조망 등 등을 기댈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곳이라며 어디든, 상황에 맞게 충분히 응용해서 사용할 수 있으니 꼭 기억해 두자.
24. 극적 등장
#21과 유사한 액자 구도다. 이 샷 역시 화면의 상하좌우 각도를 제한하고, 한정된 공간 내에서 앞뒤로의 사용을 극대화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샷은 사람이 많은 파티장이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미술 세팅에 들어가는 노력과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엄마 주디스의 파티에 내연녀 조한나가 참석한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면이다. 보다 드라마틱한 등장을 위해 감독은 조한나를 서빙하는 직원 뒤에 숨겨놓는다. 고조된 음악과 함께 불현듯 등장하는 조한나로 인해 극적 긴장감과 재미가 더해진다.
25. 사라짐의 표현
잠시 쉬어가는 의미로 간단한 영상 언어에 대해 알아보자. 특정 인물을 대변하는 소품을 활용해 그의 존재 여부를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제랄드를 소개해주기 위해 엄마를 바(bar)로 데려온 토마스. 제랄드가 사라졌다며 그를 찾아 헤매는 토마스의 모습에서 텅 빈 제랄드의 술잔으로 카메라를 패닝(panning)하여, 제랄드가 이미 그곳을 떠났다는 정보를 제공해준다.
26. 신체 접촉의 힘
실생활에서와 마찬가지로 영화 내에서도 신체적 접촉은 큰 의미를 갖는다. 극 중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들에게도, 이 모습을 지켜보는 관객들에게도 심리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신체접촉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친밀함의 표현이고, 다른 하나는 위압감의 표현이다.
다음은 신체접촉의 두 가지 의미가 서로 상충하면서 묘한 긴장감이 만들어진 장면이다. 첫인사의 의미로 악수를 제안한 조한나와 달리, 그녀의 손을 덥석 움켜쥐며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는 제랄드. 이처럼 서로 다른 의도로 신체접촉이 일어날 경우, 현실 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관객들 역시 묘한 불편함을 느끼면서 긴장감이 형성된다.
만약 본인이 연출하고 있는 장면이 영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배우들끼리 신체접촉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봐라. 분명 웃음이 됐든 어색함이 됐든 전혀 예상치 못한 기운이 화면에 담기면서 더욱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27. 몸의 언어
화면 안에서는 간단한 몸짓 하나도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다.
진실의 폭로 여부를 두고 언쟁을 벌이는 토마스와 조한나의 모습이다. 대화의 주도권을 잃은 조한나가 먼저 자리를 피하려고 하자 살짝 몸을 돌려 그녀의 길목을 차단하는 토마스. 토마스의 이런 작은 행동 하나가 그를 위압적으로 보이게 하고 둘 사이 힘의 기울기를 시각화한다. 더 나아가 둘을 다시 대립구도로 이끌어 극의 긴장감을 이어가게끔 한다. 백날 서로 마주 본 채 언성만 높이며 싸우는 것보다, 이런 작은 몸짓 하나가 장면에 생동감을 불어넣어 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28. 액션과 리액션
모든 영화는 액션과 리액션의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원씬-원샷으로 구성된 씬도 마찬가지다.
다음은 인물들 사이에서 고뇌하는 토마스의 모습을 원씬 원샷으로 촬영한 장면이다. 음악에 맞춰 현란하게 움직이는 카메라 무브먼트 이면에도 기본적인 원칙이 있다. 바로 액션과 리액션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 워너(oner)는 엄마(액션)를 보고 고민(리액션)하고, 다시 내연녀 조한나(액션)를 보고 고민(리액션)하는 토마스의 표정이 순서대로 이어진다. 뒤이어 자리를 뜨는 토마스(액션)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조한나(리액션), 동시에 그런 조한나(액션)와 토마스의 뒷모습(리액션)을 번갈아보는 미미까지 모두 어김없이 액션-리액션의 합으로 이뤄져 있다.
이런 원씬-원샷을 촬영할 때의 팁은, 액션의 주체와 객체에게 제때 포커스를 잘 맞춰주는 게 핵심이다.
29. 구애의 방향성
인물 간의 관계에는 항상 방향성이 존재한다. 보통 힘의 주도권을 쥔 사람에게 그렇지 못한 상대방이 끌려오기 마련이다. 사랑의 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다음은 미미가 토마스에게 구애하며 그의 뒤를 쫓다가 토마스의 진심을 듣곤 돌아서는 이별 시퀀스다. 감독은 둘 사이의 힘의 방향이 뒤바뀌는 순간을 시각화하기 위해 촬영 도중 180도 가상선을 넘어가는 선택을 한다. 시종일관 화면 우측에 위치하던 토마스가 미미를 뒤쫓으며 화면 좌측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마지막 버즈 아이 뷰 샷에선, 두 인물 사이에 위치한 널따란 인도가 두 사람의 심리적 거리감 및 단절감을 시각화한다.
30. 화면 구도
버스터 삼촌(빌 캠프) 뒤로 연주자들을 삼각형 대형으로 배치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버스터 삼촌의 민머리를 소실점으로 만들어 그의 존재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한편, 영화 곳곳에서 수평·수직의 좌우 대칭 샷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좌우 대칭구조는 기본적으로 균형감과 안정감을 표현한다. 뒷배경이 막혀있는 수평적 좌우대칭 구조의 경우, 정서적인 안정감을 표현해주는 반면, 뒷배경이 열려있거나 수직적으로 높게 뻗어있는 화면의 경우, 개방감과 역동성까지 부각해준다.
31. 비 오는 밤거리 조명
빗물 고인 바닥이 반사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때, 인물을 공간 조명으로부터 분리시키면, 상대적으로 더 어둡게 느껴져 인물의 고독함과 쓸쓸함까지 부각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문의: j.will.le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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